수형자가 담 밖으로 나와 그날 돌아올 수 없는 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휴게숙박소"라고 불린 가건물에서
머물렀습니다. 삿포로와 아바시리를 연결하는 중앙도로 길을 닦기 위해, 1891년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간에 걸쳐 총 1,000명 이상의 수형자가 노역에 투입되어
공사의 진행에 맞춰 차례차례로 휴게숙박소를 임시로 만들면서 이동했습니다. 별명 "움직이는 감옥"이라고 불렸고, 그 건축 방법은 통나무를 재료로 벽은
60~90㎝정도로 땅을 파서 쪼갠 나무 판자를 세로에 박아 세웠고, 방의 중앙은 토방으로 막다른 곳이 화장실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울타리가 없고 항시 감시받는 상태였습니다.
침상은 판자로 되어 있었고, 베개 대용으로서 둥근 통나무가 마루에 고정이 되어 있었으며 침구는 얇은 겹이불 하나였습니다. 출입구도 한 곳으로 도망 가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이러한 휴게숙박소의 양식이 개척 시대의 공사 현장에 도입되어 다코베야(문어방)라 불렸습니다.